아리스토텔레스는 미래의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혹은 일어나지 않거나 하는 ‘미래의 우발성’의 분석했다. 논의의 핵심은 그 미래의 우발성에 모순율을 적용했을 때 어떻게 될 것인가였다. 모순율은 서로 다른 행위가 동시에 일어날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인데 양쪽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‘미래 우발성’ 개념에 모순율을 적용하면 더 이상 우발성의 가능성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. 이를 두고 라이프니츠는 한 공간에 두 개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‘불공가능성’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모순율을 대체한다.

이러한 라이프니츠 사유는 ‘내재적 가능세계론’에 이르게 된다. 그의 따르면 우리는 다양한 가능세계들을 가지고 있고, 그 중 하나의 가능세계는 한 자아가 경험하는 세계이고 또 다른 가능세계는 타인들의 현실세계이다.

이러한 사유를 바탕으로 영화화 한 것이 ‘라쇼몽’과 ‘타인의 삶’이다. 영화 ‘라쇼몽’이 흥미로운 점은 하나의 사건이 세 가지의 배타적인 가능세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. 이러한 모순되는 세 가지의 가능세계를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서 작가는 ‘타자 되기’가 부재한 세상에 일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.

또한, 영화 ‘타인의 삶’에서도 두 주인공의 비대칭적 가능세계, 즉 한쪽은 다른 한쪽을 현실세계에서 지각할 수 있지만, 나머지 다른 한쪽은 자신의 가능세계에서만 상대의 존재를 알 수 있을 뿐이다. 나중에는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던 타자되기가 다른 한쪽의 깨달음을 통해서 그 순환성을 완성하고 결국 두 세계의 타자되기가 완성된다. 이러한 구도는 타인들의 세계를 경험하는 ‘타자 되기’를 통해 진실이 도래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.

 

+ Recent posts